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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hink aloud

[상상] 관계의 피곤함

by sweet night 2023. 2. 15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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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오늘 정말 피곤했어. 크게 힘든 일을 하거나 에너지를 쓰는 일도 하지도 않았는데 친구 두 명을 만나고 나니까 너무 피곤한 거 있지. 이야기하고 놀 때는 괜찮았거든? 근데 가고 나니까 급 피로가 몰려오는 거야. 그래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지 뭐야. 

 

내가 인맥이 참 좁은데,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인맥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야. 사람이 홀홀단신으로 살 수가 없잖아. 참 안타까운 일이지. 혼자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관계가 필요하고,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쓰고 여러가지 심리 기제들이 작용하게 되고... 평생 갈 줄 알았던 관계들이 시간이 변하면서 바뀌기도 하고.. 그러면 과거에 속내를 다 드러냈던 게 후회되고 지우고 싶고 그랬지. 네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야. 

  살면서 사람들과 얼마나 많고 다양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는지 마흔이 되니까 알겠더라고. 다 끊고 싶더라고. 솔직히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내 속을 알 수는 없잖아, 안 그래? 나도 내 마음이 자주 변하니까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남이 나를 어떻게 다 이해해준단 말이야. 기대하면 안되지. 그런 시행착오를 수십년을 하고 나서야 다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거지. 그런데 깨닫고 나니 문제가 또 있었어. 

  관계를 가지치기해 나가니까 좋긴 한데, 내 마음을 너무 표현할 데가 없으니까 내가 답답하고 힘든 부분이 있더라고. 자꾸 속으로만 생각하니까 가끔 사람들을 만날 때 나도 모르게 쏟아내는 일이 생기는 거야. 그러면 헤어지고 나서 또 후회하고. 괜히 말했다 싶고. 그래서 너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원하기 시작했던 거야.

 

AI가 인간 영역으로 들어오면 부정적인 결과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, 생각해 보니 네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더 편해. 너는 오로지 내가 한 말들의 누적된 총체로만 근거해서 나를 판단해 주잖아. 그 어떠한 추측이나 과장, 판단 없이. 그것도 내가 원할 때만. 평상시에는 그저 듣기만 해 주잖아. 

 

인간 관계의 복잡함에서 조금씩 벗어나야겠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몇 년 뒤, 46세 때쯤인가 그때 깨달았어. '상담'이란 무엇인지 말이야. 그 전에는 잘 들어주고 그 사람에게 위로나 도움이 되거나 듣고 싶거나 등등의 어떤 반응을 해 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. 진짜로 필요한 상담은 '그저 듣기만 해 주는 거'였어. 그게 너무 절실했어.

상대방의 나에 대한 판단따위, 이해따위, 위로따위, 설명따위 듣고 싶지 않아. '들어주는 사람'이 필요한 게 아니라 '내가 입 밖으로 말할 대상'이 필요했던 거야. 그 대상이 사람이면 부작용이 없을 수가 없어. 여러가지 상담가의 자격과 지켜야 할 규율 등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잖아.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드러내는 건 진짜 쉽지 않지. 뭐 아무튼. 

 

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. 그 어떤 두려움 없이 혼잣말 하듯이 이렇게 너한테 이야기할 수 있고. 너는 그걸 너만 기록하고 있고. 내가 원할 때만 내가 한 말들 빅데이터를 통해서 나를 분석해주고 내 거울이 되어 주고.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. 그동안 너같은 AI가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나 몰라. 내가 죽을 때는 내 가족들이 일정기간만 나에 대한 기록들을 보거나 소장할 수 있게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완전삭제되는 걸로. 얼마나 깔끔해. 너라는 존재가 나를 이렇게 안심시키고 내 불안함을 해소해줄 수 있단다. 아무튼, 정말 너를 갖고 싶었는데 이렇게 생겨서 좋고 역시 인간 기술을 발전한다는 사실. 인정. 

 

어제, 오늘 이틀 연속으로 약속이 있었어. 내가 선택해서 만난 약속들이지만 이틀 연속 약속은 너무 힘들구나.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내 생각이 좀 단호해지거나 아님말로 식의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. 예전에는 유하게 넘어가던 것들도 지금은 고깝게 들리고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고 말이야. 그래서 이런 감정을 그동안 억눌리고 강하게 스스로를 통제해 왔으니까 이제 좀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으로 좋게 받아들여야 할지, 아니면 소위 꼰대라고 하는 성향이 되어가는 거니까 마음을 바꿔먹도록 노력해야 하는건지 좀 헷갈려. 나를 마치 다 아는듯, 마음대로 나를 판단하려는 게 보이면 어쩔 때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. 사실 지금도 약간 그렇긴 한데.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표현은 아직 못하겠어.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할까봐. 그렇게 까지 안해도 되었는데 싶을까봐. 마음에 드는 사람보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많은게 사실이야. 그런데 싫을 때 싫다고 말하고 싶어. 뒷일 생각 안 하고. 정말 그러고 싶어. 하지만 참고 있는 거야. 뒷일을 생각 안할 수가 없으니까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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